기득권(Vested Interest).
이 단어는 언제나 안락함과 동시에 배타성을 내포합니다. 어떤 집단이 특정 가치를 독점하고 그것을 유지하려 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이데올로기'입니다.
종교의 영역에서 이 이데올로기는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슬프게도, 오늘날 많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신학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기보다 기득권자의 자리를 정당화하는 '맘몬의 논리'를 복제하고 있습니다.
종교 기득권자들이 만든 첫 번째 신학적 장치는 '부(富)의 성별화'입니다.
그들은 물질적 풍요를 단순한 경제적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과 '축복'의 증거로 둔갑시켰습니다.
"믿음이 좋으면 부자가 된다“
는 명제는 역으로
"가난한 자는 믿음이나 노력이 부족하다“
는 낙인을 찍습니다.
이 논리 구조 안에서 부유한 기득권층은 자신의 탐욕을 '영적 승리'로 포장할 면죄부를 얻고, 교회는 그들의 후원을 통해 거대한 성전을 유지합니다. 하나님은 어느덧 부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후견인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을까요? 성경의 하나님은 기득권의 편에 서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기득권이 쌓아 올린 견고한 담장을 허무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맘몬의 신학은 성경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버렸습니다. 희생은 '투자'로, 헌신은 '보상'으로, 고난은 '피해야 할 저주'로 해석의 틀을 바꾸어버린 것이지요.
두 번째 장치는 '순종의 왜곡'입니다.
기득권자들은 교회의 질서와 권위를 강조하며 성도들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합니다. 이때의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순응에 가깝습니다.
질문을 던지는 자, 의문을 품는 자는 '영적 교만'이라는 틀에 갇히고 시스템에 순응하는 자만이 '겸손한 신앙인'으로 칭송받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일까요, 아니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종교적 권력의 단맛일까요?
맘몬의 신학은 또한 '개인주의적 영성'을 강화합니다.
사회적 구조와 불의에 대해서는 입을 닫은 채, 오직 개인의 마음 평화와 가정의 복락만을 강조합니다. 신앙이 사사로운 영역으로 숨어버릴 때, 기득권은 세상을 지배하는 맘몬의 통치 구조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가 됩니다. 아니, 오히려 그 구조에 기생하여 자신들만의 안락한 섬을 구축합니다.
기득권자들이 만든 이 정교한 신학은 성도들의 눈에 '성공'이라는 안경을 씌웠습니다. 그 안경을 쓰고 보면 고난받는 예수는 초라해 보이고, 영광 중에 거하시는 승리자 예수만이 매력적으로 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는 당대 종교 기득권자들이 만든 '거짓 거룩함'으로 지정한 하나님의 거룩을 욕되게 했기 사실을.
이제 우리는 이 '맘몬의 신학'을 파기해야 합니다. 기득권의 언어가 아닌, 낮은 자의 언어로 성경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축복의 정의를 다시 쓰고, 성공의 기준을 해체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 이 작업은 무척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내가 믿어온 축복의 실체가 우상이었음을 인정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 파괴된 성전의 잔해 위에서야 비로소 진짜 하나님, 광야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계속 이어집니다)
3장에서 우리는 기득권이 어떻게 '신학적 언어'로 둔갑하는지 다루었습니다. '분립개척'은 본래 건강한 교회의 확장을 의미하는 아름다운 용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들의 개척'을 위해 교회 자산의 상당 부분을 떼어가는 방식이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선교적 결단이 아니라 '영적 권력을 이용한 자산 이전'에 불과합니다. 이는 맘몬의 논리가 가장 거룩한 용어의 탈을 쓰고 나타난 전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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