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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회를 떠난 이유/교회를 떠나는 가난한 자들

노아김 2025. 11. 11. 00:54

1. VIP석에 앉은 사람들

 

 내 안의 번영신학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면, 바깥 세계의 교회를 바라보는 과정은 그보다 더 쓰라린 깨달음이었다.

 

 개인의 신앙 문제를 넘어선,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대형교회에는 소위 'VIP'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 임원, 유명 정치인, 막대한 부를 가진 사업가들 말입니다. 그들은 주일마다 지정된 자리에 앉았고, 목사님은 설교 중간중간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증인"으로 치켜세웠다.

 물론 그들이 믿음을 가진 성도라는 사실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 그리고 그들로 인해 형성되는 교회의 분위기였다.

 

 그들에게는 일반 성도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일종의 '프리미엄'이 있었다. 교회 행사 기획 단계에서 그들의 의견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고, 교역자들의 그들을 향한 태도에서는 분명한 경외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예수님이라면 그 부자들을 과연 VIP석에 앉히셨을까?

 

 오히려 예수님은 부자들에게 엄격하셨고, 가장 낮은 자리를 찾으셨으며, 세리나 창녀와 같은 소외된 이들을 친구로 삼으셨다. 그런데 왜 현대 교회는 그토록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환호하고 그들을 간증대의 가장 빛나는 자리에 세우는 걸까?

 

 그것은, 교회가 그들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 때문이다. 교회 규모와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트로피'가 필요했던 거다. 부자가 많을수록, 고위직 인사가 많을수록, 그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교회'라는 명패를 스스로 달 수 있었으니까. 그 결과, 교회는 세상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복음의 길을 걸어야 할 공동체에서, 세상의 성공 논리를 그대로 복제하고 인증해 주는 '성공 클럽'처럼 변질되기 시작했다.

 

2. 부와 권력이 교회에 기대하는 것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굳이 교회를 찾는 이유도 단순한 신앙심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들이 교회로부터 세 가지 핵심적인 '프리미엄'을 기대한다고 생각한다.

 

(1) 사회적 프리미엄: 거룩한 인맥의 형성

 

 교회는 세상의 어떤 모임보다 강력한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같은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일종의 거룩한 인증 마크가 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교회를 매개로 한 비즈니스 거래나 사업적 협력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곤 한다. 부자들이 교회에 모이면,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는 폐쇄적인 엘리트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정치인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에게도 교회는 매우 중요하다. 대형교회의 영향력은 곧 표심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교회의 신뢰도를 등에 업으면 자신의 도덕적 이미지를 쉽게 포장할 수 있다. 그들은 교회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권력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셈이다. 교회는 이들을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포장함으로써, 그들의 권력에 신성한 꼬리표를 달아주는 공생 관계를 맺는다.

 

(2) 영적 프리미엄: 죄책감의 세탁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많은 부와 권력은 깨끗한 방식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 때로는 타인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비정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필연적으로 따르는 죄책감과 불안이 있다.

 번영신학은 여기서 기가 막힌 해결책을 제시한다.

 

 "당신이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고, 당신의 뛰어난 믿음의 결과다."

 

 이 메시지는 그들이 세상에서 행했던 수많은 비윤리적 행위나 불평등한 방식으로 얻은 재물에 대한 죄책감을 한순간에 씻어준다. 심지어 그 재물을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시키고 만다.

 그들에게 헌금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영적인 보험료이자,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생긴 죄책감을 털어내는 면죄부처럼 기능한다. 많은 돈을 헌금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를 '경건한 부자'로 포장하고,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그 부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를 기대한다.

 

(3) 정서적 프리미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기 위안

 

 성공은 외롭다. 정상에 오른 사람일수록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 어렵다. 교회는 이들에게 '권위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모두 평등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지위가 유지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서 그들은 잠시나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정서적 위안을 얻는다는 점이다.

 

 특히 목사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목사님은 세상의 성공을 영적으로 지지하고 축복해 주는 권위자 역할을 한다. 목사가 그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당신은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는 사람"

이라고 말할 때, 그들은 자신의 삶의 무게와 고독함을 잊고 다시 세상에 나가 경쟁할 힘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목회자는 그들의 '영적 코치'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게 된다.

 

3. 침묵하는 강단: 불평등의 신성화

 

 이러한 공생 관계의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바로 강단의 침묵이다.

 

 교회의 재정 상당 부분이 부유한 소수 교인들의 헌금에 의존하게 되면, 목회자는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설교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재물에 대한 경고, 사회 정의에 대한 외침, 불평등에 대한 비판은 점점 사라지고, 대신 위로와 축복, 개인의 긍정적인 삶에 초점이 맞춰진 설교만이 남게 된다.

 

 내가 다녔던 교회의 설교는 항상 '내' 이야기였다.

 

 '내가 어떻게 축복받을 것인가'

 '내가 어떻게 성공을 유지할 것인가'

 

 성경에 분명히 존재하는 '가난한 자를 돌보라', '부자는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와 같은 불편한 구절들은 조용히 무시되거나, 아주 온건하게 해석되어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이 침묵은 결국 불평등을 신성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첫째, 가난을 '신앙 부족'의 증거로 만든다.

 

 교회가 부자들을 끊임없이 '축복의 증거'로 내세우면, 가난한 교인은 자연스레 '믿음이 부족해서 저 축복을 받지 못하는구나'라고 스스로를 비난하게 된다. 이들은 교회로부터 위로와 지원을 받기는커녕, 끊임없이 더 많은 헌금과 더 깊은 헌신을 요구받는 악순환에 빠진다.

 

둘째, 구조적 문제를 은폐한다.

 

 번영신학은 가난과 불평등을 오직 개인의 신앙적 문제로만 환원시킨다. 그래서 교인들은 사회 구조적인 불의에 대해 눈 감게 된다.

 

 가난한 이웃이 착취당하거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세상의 부조리한 질서를 그대로 수용하고 정당화하는 '자본의 종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4. 교회를 떠나는 가난한 자들

 

 결국 이 구조적 모순이 낳는 가장 슬픈 결과는 가난하고 소외된 성도들의 이탈이다.

 

 번영신학이 지배하는 교회에서 가난한 성도들은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교회는 그들에게 '사랑'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헌금 액수'와 '사회적 성공'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청년부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친구를 보았다. 그는 교회 리더였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교회는 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보다는,

 

 "더 믿고 기도하면 길이 열릴 것"

이라는 공허한 위로만 건넸다. 하지만 VIP 성도 중 한 분의 자녀가 유학을 갈 때는 교회 전체가 나서서 축복하고 지원했다. 이 극명한 대비 앞에서, 친구는 결국 교회를 떠났다.

 

 친구가 떠나며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 교회는 가난한 나를 하나님이 저주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위로받을 수 없어."

 

그 말이 나를 깊이 찔렀다.

 

 내가 번영신학에 실망했던 것이 개인적인 실패 때문이었다면, 친구의 이탈은 교회가 복음의 본질인 사회적 약자를 향한 사랑과 정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부자들에게는 안식처였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끊임없는 패배감과 좌절감을 주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깊이 파고들수록, 내가 교회를 떠났다는 행위가 단순히 개인의 신앙적 방황이 아니라, 왜곡된 교회의 시스템에 대한 양심적인 저항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현상은 단순히 몇몇 목회자의 타락이나 교회의 재정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축복'의 의미를 '자본주의적 성공'으로 오해한, 거대한 신학적 착각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이다.

 

 이제 이 불편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는 성경이 재물에 대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진정한 성경적 재물관을 찾아 나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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