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제3의 길: 맘몬에 저항하는 새로운 공동체
1. 제3의 길에 서다: 떠남과 남음의 너머
교회를 떠나 고독한 광야에 선 후, 나는 비로소 냉정하게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나의 고통은 단순히 '나쁜 교회'를 만난 불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번영신학이라는 거대한 우상이 한국 교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며, 내가 그 우상 숭배의 구조 속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다는 뼈아픈 깨달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이에게 "당장 교회를 떠나라"고 촉구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비록 모순적일지라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 됩니다.
"어떻게 이 거대한 구조 속에서 양심을 지키고 복음의 본질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제3의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길은 물리적인 ‘떠남’과 영적인 ‘순응’이라는 이분법을 거부합니다.
제3의 길이란,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맘몬의 논리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철저히 순종하는 ‘영적 저항 공동체’를 이루는 길입니다. 이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와 실천의 문제입니다.
2. 재정의 혁명: 청지기 직분의 재발견
제3의 길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가장 은밀하고 치명적인 영역, 즉 재정에서부터 혁명을 시작해야 합니다. 번영신학은 재물을 축복의 증거로 보았지만, 제3의 길은 재물을 정의 실현의 도구로 다시 정의합니다.
(1) 십일조: ‘거래’가 아닌 ‘공의’
나는 십일조를 드릴 때마다, 그것이 일종의 ‘보험료’나 ‘거래 비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십일조를 냈으니, 하나님이 나의 나머지 아홉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거래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번영신학이 주입한 십일조관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십일조는 본래 제사장 계열뿐만 아니라,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위해 3년마다 사용되던 사회 안전망이었습니다. 이는 재물을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돌보며 공동체의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제3의 길을 걷는 우리는 십일조의 본래 의미를 회복해야 합니다. 수입의 10%를 교회의 웅장한 건물이나 조직 운영에 무조건 바치는 대신,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이 헌금이 정말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쓰이는가?”
- 재정 투명성 요구: 교회의 재정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하십시오.
- 직접적인 실천: 만약 교회가 맘몬의 건축물에만 몰두한다면, 나의 헌금 중 일부를 가난한 이웃을 돕는 구체적인 사역(예: 지역 쪽방촌, 탈북민 지원 등)에 직접 사용하십시오.
헌금은 우리의 성공을 보장받는 거래가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헌금을 드리면서도 재정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의 재물을 바르게 관리하려는 청지기의 정당한 의무입니다.
(2) 소비 생활의 ‘선지자적 단순함’
번영신학은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므로, 우리도 좋은 차와 넓은 집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제3의 길은 우리에게 ‘선지자적 단순함’을 요구합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금욕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소비가 이웃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성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우리는 과시적인 소비를 멈추고, 정말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 우리의 삶의 방식 자체가 '물질을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나누고 비우는 삶'을 증언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부요함'은 통장에 찍힌 액수가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풍성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소비를 단순화할 때 생겨나는 ‘잉여 재물’은 곧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는 ‘정의의 자원’이 됩니다.
3. 공동체의 재건: 성공의 가면을 벗다
번영신학이 지배하는 교회 공동체는 '영적 성과주의'의 각축장입니다.
모두가 '축복받은 척', '문제가 없는 척' 연기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제3의 길은 가식의 가면을 벗고, 진정한 취약성과 연대를 기반으로 공동체를 재건합니다.
(1) ‘성공 간증’ 대신 ‘실패 고백’의 장
나는 대형 교회에서 수많은 간증을 들었습니다. 내용은 항상 비슷했습니다.
"사업이 망할 뻔했지만, 헌금했더니 놀랍게 회복되었습니다!"
"아이가 명문대에 합격했습니다!"
이런 간증은 공동체 내에서 '불행은 믿음 없는 자의 몫'이라는 무언의 압력을 만들었습니다. 실패했거나, 병들었거나, 가난한 사람들은 입을 다물어야 했습니다.
제3의 길을 걷는 공동체는 그 반대여야 합니다.
- 진정한 공감: 우리는 실패를 고백하고, 서로의 고통과 불안을 숨김없이 나누는 '취약성의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업이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지금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와 같은 솔직한 고백에 대해 비난이 아닌 따뜻한 위로와 기도만이 오가야 합니다.
- 영적 코칭: 목회자는 '성공하는 법'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붙드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가 아니라, 문제 한가운데 있을 때 비로소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2) 목사의 권위: ‘독점’이 아닌 ‘봉사’
번영신학은 목사에게 재물의 축복을 독점하는 영적 권위를 부여하며, 그 권위를 통해 교인들을 통제합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대리인이자 축복의 통로가 되는 순간, 교회는 민주적인 공동체가 아닌 수직적인 왕국이 됩니다.
제3의 길에서 목사는 ‘하나님의 종’으로 그 본래의 위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 봉사하는 리더십: 목사는 교인들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는 자여야 합니다.
- 영적 책임: 목사는 교인들에게 복을 약속하는 대신,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가르칠 영적 책임만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은 그 권위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진실함 때문에 존경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성도들 스스로가 목회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습관을 버리고, 말씀 앞에 서서 스스로 판단하고 질문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때 가능합니다.
4. 축복의 재정의: 마카리오스의 복음
번영신학이 말하는 축복이 '물질적 풍요'와 '건강', '성공'이었다면,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축복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헬라어로 마카리오스(Makarios)라고 불리는 이 복은 ‘관계적 부요함’을 의미합니다.
(1) 가난함의 축복
가장 역설적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입니다.
부요함 속에서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오만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가난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번영신학이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가난함이나 약함을 부정하고 숨길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로부터 멀어집니다. 우리의 약점과 실패를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머무를 공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2) 고난과 박해의 영광
번영신학은 고난을 '믿음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로 규정하고 즉각적인 해결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맘몬의 논리를 거부하고, 세상의 불의에 맞서 정의를 외치며, 소외된 이웃을 위해 나의 재물을 나눌 때, 세상은 우리를 비웃고 박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3의 길은 이 박해를 축복의 가장 확실한 증거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성공 공식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진정한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건물의 크기나 통장의 잔액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영원하고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5. 남은 자들에게: 희망의 마침표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아마도 나처럼 교회의 모순 앞에서 깊이 좌절했거나, 혹은 그 시스템을 떠나 방황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고통이 결코 헛되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겪은 영적 고통은 당신이 아직 진정한 복음의 가치를 붙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맘몬이 지배하는 세상과 교회 속에서, '아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이 이 시대에 남겨두신 ‘진정한 성도’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시스템을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속한 작은 소그룹, 우리의 가정, 그리고 우리의 직장에서 맘몬에 대한 저항 공동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 가정의 재정 계획을 세울 때, ‘축적’이 아닌 ‘나눔’을 최우선 목표로 세우십시오.
- 직장에서 ‘탐욕’ 대신 ‘정의로운 노동’을 실천하는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하십시오.
- 당신의 작은 교회에서 재정 투명성을 요구하고, 이웃 구제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깨어있는 소수’가 되십시오.
우리의 작은 저항은 사막에 심겨진 한 그루의 나무와 같습니다. 당장은 외롭고 힘들어 보일지라도, 그 뿌리는 결국 생명의 물을 길어 올릴 것입니다. 바라건대, 이 책이 당신의 외로운 여정에 작은 위로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실천적인 용기를 심어주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맘몬의 교회를 떠났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곧 진정한 복음 공동체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단순하게, 가장 정의롭게. 그것이 우리가 걸어야 할 제3의 길이며, 그 길이 우리를 진정한 자유와 복음의 영광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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