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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절망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수필

노아김 2025. 9. 3. 23:29

길을 잃어도 괜찮아: 성경 속 실패자들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뜻

 

  수많은 사람이 실패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그런 불행한 일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형통한 삶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나도 실패라는 단어에 알레르기라도 있는 사람처럼 살았다.

 목회자가 되기 위한 신학수업을 받고, 부교역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나름대로의 성공을 향한 포부를 키웠다. 내가 사역을 하는 곳에서 칭찬과 부흥의 결과는 앞으로의 개인목회에 대한 자신감과 희망에 더 부풀게 하는 초석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환경적인 요인들로 인해 개척사역에 내몰렸지만, 시작부터 기대했던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목회시작하는 단계에서 장소를 얻기 위한 금전적인 문제를 비롯하여 애써 일군 공동체 속의 갈등들은 교회를 흐트러뜨리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열정을 쏟았던 사역들은 허공에 흩어지는 연기 같았다. 겉으로는 애써 괜찮은 척, 모든 것이 성공적인 목회의 과정이라고 여기서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가고 있었다.

 

 '하나님, 왜 저만 이런 길을 걷게 하시나요?'

 

 기도할 때마다 내 입에서는 자꾸만 원망 섞인 질문들이 튀어나오곤 했다.

 정말이지, 내가 하는 모든 일에는 실패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것만 같았다. 남들은 쉽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왜 나만 이렇게 늘 허덕이는 걸까. 그런 생각이 나를 집어삼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다.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늘 성경 속 인물들을 성공의 관점에서만 바라봤던 것이다.

 모세가 홍해를 가른 위대한 지도자이고,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른 용사라고만 생각했다. 그들의 성공 뒤에 숨겨진 뼈아픈 실패와 좌절은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 이면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이다.

 성경을 우리의 행복과 성공을 위한 지침서 정도로 여기며 내가 보고 싶었던 부분만 골라 읽거나 해석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성경의 진정한 이야기를 보여주셨다. 실패자들의 성경. 길을 잃고 헤매던 이들의 이야기가 비로소 내게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단순히 나의 실패의 이야기들을 늘여 놓을 마음은 없다. 다만 우리가 실패라고 느꼈던 것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실패라는 관념에서 절망을 느끼는 이들에게, 성경 속 수많은 인물들의 실패를 바바보면서 인간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는 여정에 초대하고 싶다.

 이 글을 통해 당신이 겪은 아픈 실패가 사실은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재료였음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는 인생의 여정에서도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을 발견하며 오히려 실패가 은혜로 받아들여지는 믿음이 되기를 바란다. 그 믿음 안에서 참된 평안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장 실패는 우연이 아니다

 글을 시작하며 솔직히 고백했듯, 나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긍휼히 여기는 복음의 열정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예배의 처소를 마련하는 경제적인 것부터 시작하여, 전도와 교육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성을 어떻게 원만하게 이루어 가느냐는 것들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넘쳐났다. 그동안 나름 자신했었던 일련의 목회의 과정들이 현실에서는 삐거덕 되며, 나의 속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절망의 구덩이에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그동안 봐왔던 성경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는 거다. 아니, 어쩌면 실패를 통해 비로소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아니면 인간은 실패를 향해 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야기는 실패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들을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그 하나님이 나의 모든 인생의 과정을 이끌어 가고 있다.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은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들을 인도하고 있는 하나님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의 삶에서 실패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떠올려보자.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구원자이다.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낸 기적의 사람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처음부터 위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살인이라는 치명적인 실패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광야로 도망쳐야 했던 불운의 사람이었다.

성경에서 모세는 그의 태생부터가 난관에 빠져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모세가 태어난 시기의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전락한 상황이었다. 요셉 이후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더부살이가 아닌 이집트에 은혜를 베푼 민족으로 대우를 받았지만, 이집트의 왕조가 바뀌자 바로는 이 모든 것을 망각하고 번성하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였다. 그 결과 이집트와 파라오는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삼았으며, 히브리인의 멸족을 위해 아이들을 낳지 못하게 하였다. 만약 이를 어겨 태어나는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칙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모세가 태어난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이 내용을 만약 동화로 묘사한다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모세의 출생과 나일강에 버려진 이야기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히브리인이 낳은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령을 피해 갓 태어난 아들을 석 달 동안 몰래 키웠어요. 하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를 준비해 역청과 나무의 진을 칠했습니다. 그리고는 아기를 그 안에 눕히고 나일강에 띄워 보냈죠.

 이것은 단순히 아기를 버린 것이 아니라, 아기를 살리기 위한 한 어머니의 절박한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강물에 떠내려 보낸 아이가 걱정이 되어 어머니는 누이 미리암을 시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 그 뒤를 좋게 하였습니다. 갈대상자에 누인 아이는 강줄기를 따라 떠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일강가에서 파라오의 딸이 그이 시녀들과 함께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가운 햇볕을 피해, 나뭇가지가 드리운 그늘 아래서 목욕하던 공주의 눈에는 강물에 떠내려 오고 있는 갈대 상자를 눈에 띄였습니다. 그리고 시녀를 불러 그 상자를 가져오게 하여 두껑을 열었을 때, 공주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상자 안에는 갓난아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자의 뚜껑이 열리자 아니가 놀랐는지 아니면 마침 배가 고팠는지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이를 본 공주는 히브리인이 버린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이를 측은하게 여겨 자기 아들로 키우기로 결정했어요.

 이때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이 나타나 파라오의 딸에게 아기를 돌볼 유모를 구해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파라오의 딸이 허락하자, 미리암은 모세의 친어머니인 요게벳을 데려왔고, 요게벳은 삯을 받으며 자신의 아들을 젖먹이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어요.

 이로써 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자라게 되었고,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답니다.

 

 모세의 실패를 제외하면 이렇게 동화 같은 결말로 이야기는 끝이 나게 된다.

 우리는 모세에 대해 거의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 모세는 비록 노예의 아들에서 파라오의 왕자로 신분이 상승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거나 자기 민족을 회복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그는 왕궁에서 자라면서 그의 친어머니이자 유모였던 요게벳을 통해 자신이 노예생활을 하는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을 깨닫게 된 것이 히브리인을 차별하는 애굽사람을 죽이는 실패의 삶의 원인이 되었다.

 모세가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을 돕다가 애굽 사람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출애굽기 212.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그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좌우를 살폈을까. 들키지 않으려 했던 간절한 마음, 정의를 위해 나섰다가 오히려 살인자가 되어버린 막막함. 그날 밤 모세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결국 그의 자기 민족을 위한 '의로운 행동'은 자기 민족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살인이라는 실패로 돌아왔다.

이 상황을 이야기 형식을 엮어 보았다.

 

이집트 사람을 죽인 모세

 

 어느 날 모세가 자신의 동족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그는 한 이집트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폭력과 학대에 분노한 모세는 주위를 둘러보고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모래 속에 숨겨 버렸습니다.

 다음 날 모세는 다시 동족에게 갔는데, 이번에는 히브리 사람 두 명이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어찌하여 동족을 때리시오?“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소? 당신이 어제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일 생각이오?“

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세는 자신의 행동이 이미 알려졌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파라오가 이 사실을 듣고 자신을 죽이려 할까 봐 이집트를 떠나 미디안 땅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광야에서 보내게 된다. 위대한 지도자의 화려한 출발이 아니라, 초라하고 비참한 실패가 그의 인생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또 다른 위대한 인물, 다윗은 어떤가. 그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실패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부하의 아내를 범하고, 그 부하를 교활하게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건. 우리는 사무엘하 11장에 기록된 그의 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왕궁 옥상에서 한 여인을 보고는 그녀를 취하고, 그 죄를 덮기 위해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를 전쟁터의 최전방에 내보내 죽게 만들었다. 그의 삶은 승리와 영광으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탐욕과 배신, 살인이라는 깊은 실패의 어둠도 품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왕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가장 비참한 실패를 경험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를 생각해보자.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그는 예수님을 향한 충성심이 누구보다 강했던 사람이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라고 호언장담했던 그의 모습은 얼마나 든든해 보였던가. 하지만 그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그는 예수님이 체포되던 날 밤,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 앞에서 세 번이나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라고 예수님을 부인했다. 닭이 울었을 때, 베드로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예수님과의 눈 맞춤, 그리고 쏟아지는 눈물. 그 실패의 순간은 베드로의 인생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모세의 살인, 다윗의 간음과 살인, 베드로의 배신. 이들의 실패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이 실패들은 그들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이들의 실패를 그저 단순한 실수나 죄로만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그 실패가 그들의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간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성경은 말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이 실패들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다음 장에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한다.

 

2장 실패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섭리

 지난 장에서 우리는 모세, 다윗, 베드로의 치명적인 실패들을 함께 살펴보았다.

 어쩌면 그들의 실패는 그들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정말 인간적인 시각이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성경의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실패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더라. 오히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완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다. 실패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모세를 보라. 그는 애굽의 왕자로서 모든 것을 가졌다. 당대의 최고 지식과 힘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혈기 어린 마음으로 동족을 구하려다 살인자가 되었다. 도망쳐 숨어버린 미디안 광야에서의 40. 그 시간은 모세에게는 가장 쓸모없고 무의미한 시간이었을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40년 동안 모세의 혈기와 오만을 꺾으셨다. 광야의 메마른 땅에서 양 떼를 돌보며, 그는 비로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가 가진 세상의 모든 지식과 능력은 광야의 모래바람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를 철저하게 무너뜨리셨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그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의 실패는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만드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다윗은 어떤가. 그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덮기 위해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였다. 그의 죄는 한 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너무나도 철저하고 계획적인 죄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왕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바닥까지 추락했다. 나단 선지자가 그의 죄를 지적했을 때, 다윗은 모든 변명을 포기하고 철저하게 무너져 내렸다. 시편 51편에 담긴 그의 고백은 죄인의 심장을 찢는 듯한 울림이 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이 실패를 통해 다윗은 자신의 죄인 된 본성을 가장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깊은 회개를 통해 다윗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더욱 견고하게 서게 된다. 그의 실패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온전히 경험하는 섭리였다.

 베드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는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예수님이 체포되던 그 순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가장 중요한 스승을 외면했다. 닭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아마 절망의 끝을 보았을 거다.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무너짐을 겪었을 베드로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실패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오만한 자기 의로 가득 차 성령의 능력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베드로의 실패는 그를 철저하게 낮추었고, 그 빈자리에 성령의 충만함이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힘이 아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이처럼 성경 속 인물들의 실패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 것처럼 보였던 그 실패들은 사실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하나님은 그들의 성공을 통해 일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패와 연약함을 통해 일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능력과 의지를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3장 나의 실패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

 우리는 지난 두 장에 걸쳐 모세와 다윗, 베드로의 실패를 살펴봤다.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익숙해서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가 결국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제는 우리 자신의 실패를 들여다볼 차례다. 나는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실패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실패는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한때 목회 현장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기도하고 발로 뛰며 사역했지만, 눈에 보이는 열매는 없었다. 성도들은 하나둘씩 떠나갔고, 나는 혼자 텅 빈 예배당에 남아 서성였다. 그때 나는 내가 겪는 이 고통스러운 실패가 내 부족함 때문이라고, 내가 믿음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경 속 실패자들을 다시 만나고 내 삶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되짚어 보니, 그 실패는 나를 무너뜨린 벽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는 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건 말이다, 아주 단순한 생각의 전환에서 시작되었다. 실패를 ''이 아니라 '과정'으로 보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수많은 실패들, 예를 들면 직장에서의 해고, 시험에서의 낙방, 사업에서의 부도, 혹은 관계의 단절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보통 이런 일들이 생기면 '내 인생은 이제 끝났구나'라고 단정 짓곤 한다. 하지만 모세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친 그 순간이 그의 인생의 끝이 아니었듯, 우리의 실패도 끝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실패가 우리를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로운 길로 이끌어 가는 과정일 수 있다.

 

 다음으로, 실패 후의 시간을 '광야의 시간'으로 받아들여 보라고 권하고 싶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쳤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광야를 떠돌았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후 혼자 어둠 속에서 울었다. 이 시간들은 그들에게는 고통스럽고 외로운 시간이었겠지만, 동시에 그들이 철저하게 자신의 힘과 능력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된 시간이었다. 우리의 실패 후에도 이런 광야의 시간이 찾아올 수 있다. 내가 가졌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막막함,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하지만 그 광야에서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실패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봐라.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실패를 겪었을 때, 그 아픔과 상처만 바라보지 말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찾아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는 목회 현장에서 실패했을 때, 인간적으로는 참 힘들었지만, 그때 비로소 내가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열매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말이다. 그 실패 덕분에 나는 교만이라는 위험한 덫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실패는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더 깊이 의지하게 만드는 섭리였다.

 그러니 이제 당신의 인생을 한번 되돌아보라. 당신이 겪었던 가장 쓰라린 실패의 순간은 언제였나? 그때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꼈나?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해 당신은 무엇을 배웠나? 아마 당신은 그 실패를 통해 더 단단해지고, 더 겸손해지고, 더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실패가 사실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빚으시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음을 깨달을 때, 당신의 삶은 더 이상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로 바뀌게 될 것이다.

4장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함께 걸어온 이 길의 끝에서, 나는 이제 당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이 지금껏 겪었던 모든 실패들, 그 쓰라린 경험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실패들은 당신의 인생을 망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빚으시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나는 목회 현장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했고, 내 삶의 길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바로 그 실패의 구덩이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늘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완벽한 길을 가려고 노력한다. 길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실패하는 것을 가장 큰 죄악처럼 여긴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보여주지 않던가. 하나님은 완벽한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모세의 광야 생활이 그랬고, 다윗의 도피 생활이 그랬으며, 베드로의 통곡이 그랬다. 그들은 모두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순간, 비로소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의 실패는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였다.

 그렇다면 당신의 실패는 어떤가? 당신은 지금껏 당신의 실패를 '아픈 과거'로만 치부해 왔는가? 혹은 '내 인생의 오점'으로만 여겨 왔는가? 나는 이제 당신이 그 실패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당신이 겪었던 재정적 어려움, 관계의 단절, 혹은 건강의 악화와 같은 실패가 사실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부르심은 아니었을까? 그 실패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겸손과 은혜를 지금은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한동안 내 실패를 두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라며 원망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 그 실패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

라고 자문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답은 '아니오'. 그때의 실패 덕분에 나는 내 힘을 의지하는 교만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내 삶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고, 이 지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뿐임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독자여, 당신의 삶이 지금 길을 잃은 것 같아 보이는가? 실패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아 보이는가?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

. 그 길은 끝이 아니라, 당신의 삶을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로 바꾸어줄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당신의 가장 깊은 상처와 가장 쓰라린 실패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생에 써내려 가실 가장 아름다운 글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당신의 삶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보기를 바란다.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이 갈보리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불렀다. 그리고 성령으로 광야같은 세상을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한다면 당신의 실패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 신앙이 나를 감동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