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독교가 직면한 가장 뼈아픈 비극은 '구원의 사유화(Privatization of Salvation)'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죽음 이후에 펼쳐질 안락한 내세행 티켓이나, 험난한 세상 속에서 개인의 심리적 평안을 유지해 주는 종교적 보험증서쯤으로 여긴다.
예배당 안에서는 거룩한 기쁨을 노래하지만,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마주하는 세상의 구조적 고통과 불의 앞에서는 철저히 무기력해진다. 왜 우리의 복음은 이토록 왜소해졌는가?

그 근저에는 성경의 진리를 교묘하게 왜곡한 '헬레니즘적 이원론'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며, 저 높은 하늘은 거룩하고 이 땅은 속되다는 플라톤적 세계관은 기독교 신앙을 '이 땅을 탈출하여 저 너머의 세계로 도피하는 종교'로 변질시켰다.

이 거짓된 프레임 속에서 현세의 삶은 그저 지나가는 정거장이 되었고, 성도들은 세상의 아픔에 눈을 감은 채 내면의 고요함(아타락시아)만을 추구하는 무관심의 죄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성경신학의 거장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는 이러한 공간적 이원론을 철저히 붕괴시킨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아래(지상)에서 위(천국)로' 올라가는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옛 세대(This present evil age)'에서 '오는 세대(The age to come)'로 넘어가는 시간과 역사의 전환임을 날카롭게 증명해 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를 세상 밖으로 탈출시킨 것이 아니라, 다가올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이 부조리한 옛 세대 한복판으로 강렬하게 뚫고 들어오게 한 우주적 사건이다.

따라서 구원받은 백성은 세상을 등지고 도피하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시작된 '오는 세대'의 공기를 마시며, 여전히 악이 잔존하는 '옛 세대'의 한가운데서 치열한 영적 전투를 수행하는 하나님 나라의 선봉대다.

이러한 보스의 구속사적 통찰은 헤르만 리델보스(Herman Ridderbos)에 이르러 더욱 역동적인 실천으로 연결된다. 리델보스는 그의 저서 『하나님 나라』에서 신약성경이 말하는 '바실레이아(Basileia, 하나님 나라)'가 결코 정적인 장소(영토)나 내면적인 감정 상태가 아님을 못 박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왕권', 즉 만물을 회복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통치 행위(Action)' 그 자체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복시켜야 한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선포하셨을 때, 그것은 개인의 마음에 임하는 평화 정도를 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된 세상의 왕들(맘몬, 성공, 탐욕)의 지배가 끝나고, 하나님의 강력한 통치가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공동체 속에서 맹렬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거룩한 쿠데타의 선언이다.

결론적으로, 구원은 결코 박제된 명사가 될 수 없다. 구원은 내 인생의 주권이 이동하는 혁명이며, 깨어진 세상을 향해 샬롬을 선포하는 외침이고, 불의한 세상 속에서 공의를 행하는 피 끓는 동사(Verb)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내세의 도피처인가, 아니면 현재를 변혁하는 하나님의 통치인가? 천국행 티켓을 움켜쥐고 다가올 종말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냄으로써 그 영광스러운 미래를 오늘로 앞당겨올 것인가?

지금 그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 바로 그 위대하고도 치열한 '동사로서의 구원'을 회복하기 위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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