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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대리운전기사 아무도 가르쳐 주질 않는 그 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노아김 2025. 1. 20. 02:42

14회 비정규 노동수기 공모전 | 우수상

 

취한 손님도 대리기사도 모두 안전하게 귀가했으면

김태우

 

열심히 길을 가다가 어느 날 막다른 길에 들어섰을 때, 그 길을 벗어날 방법을 찾는다. 사방이 막혀 있다고 여겨질지라도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닥친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는 그렇게 우리를 막다른 길로 몰고 갔다. 그때 누구에게나 쉽게 열려 있는 길이 대리운전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누구의 간섭 없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이것만 한 것이 또 있겠는가?

 

스마트폰에 대리운전기사용 앱을 설치한 후 온라인 교육을 간단하게 이수하고 처음 대리운전을 나섰다. 무엇이든지 새롭게 일을 시작함은 항상 기대감과 더불어 긴장감도 동반한다. 어떤 길을 가야 하며 어떤 손님을 만날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맞닥뜨린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처음 시작은 서울 청량리역 근처로 잡았다. 내가 사는 지역과 가까웠고, 주변에 유흥주점을 비롯하여 나름대로 유동인구가 있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자꾸 일어났다. 자동으로 주어진 콜을 잡으려고 하면 사라졌다. 대리운전한 지 2년이 넘어선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어리바리한 순간이었지만 당시엔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우여곡절 끝에 첫 손님을 만났다. 콜을 잡으면 손님에게 전화하여 출발지를 확인하고 기사인 내가 도착할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였다.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아서 실행해야 하지만, 초보 기사에게는 첫 콜부터 난제였다. 콜센터에서 전화가 와 손님과 통화하였느냐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첫 손님은 가족끼리 식사하다 반주로 술을 드신 분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손님들 또한 만취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하루의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서서히 긴장감이 누그러졌다. 낯선 사람을 만나 낯선 차를 몬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문제는 주취자들과의 소통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대한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일에 대한 것은 경험을 통해 익히거나 주변 베테랑 기사들에게 물어서 정보를 얻으면 되었다. 문제는 사람과의 소통이었다. 날마다 만나는 대부분의 손님은 주취자들이다. 그리고 다양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다. 대리기사의 일도 서비스업에 속한다. 매일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지만, 대리기사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은 친절함과 공손함이다. 거기에 성실함까지 갖춘다면 손님으로서는 최고의 기사를 만나는 것이다.

 

대리기사의 입장에서 주의해야 할 일은 출발과 주차다. 이때 사고율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 까닭에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때 손님이 직접 주차하겠다고 하면, 이처럼 반가운 일이 없다. 하지만 손님이 주취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리기사로서 책임감과 성실성과는 반하는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손님이 주차하다 사고가 났을 때는 대리기사도 법적 책임 공방에 휩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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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점잖은 손님이 도착지에 다다르자 자신이 주차하겠다고 하였다. 그분의 말투나 행동으로 봐서는 대리기사를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님 참 감사한 말씀이지만, 제가 주차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니 제가 주차하겠습니다.”

 

사실 손님이 너무 많이 취했으니, 제가 주차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굳이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런 나의 반응에 손님은 주차까지 맡기고 난 후에 인사하고 떠나려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팁을 주었다. 서비스업이란 팁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손님의 편의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마지막까지 친절함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성실함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이런 인식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 결국 시비가 일어나고 사고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조용히 잠드는 손님이 제일 좋아

출발부터 운행 과정, 주차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이 기사의 기본 덕목이라면, 손님 또한 기본적인 사회적 덕목을 가져야 한다. 내가 만난 손님 중 가장 피하고 싶은 유형은 지시형 손님이다.

 

차선에서부터 속도는 물론이고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노선을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주장하여 주차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요구하는 손님이 있다. 가끔 있는 게 아니라 한 부류로 묶을 만큼 다수다. 처음에는 이런 손님에 어떻게 대응할까 고심하였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내가 어떻게 도착지에 갈 것인지에 대해 고지한다. 그래야만 운행 중 갈등과 분쟁의 요소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손님, 내비게이션에 따라 운행하겠습니다. 혹 선호하시는 길이 있으시면 중간중간 알려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기사가 원하는 길로 가라든지, 자신이 선호하는 길이 어디인지 알려준다. 그 후로 지시형 손님도 누그러지는 경우가 많다.

 

운행하는 동안에는 손님과 대화하는 것을 자제한다. 그래야만 대리기사가 운전에 집중하여 안전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손님이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지식이 옳다고 생각해서 도착할 때까지 줄곧 자기 생각을 설교하는 손님을 만나면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사의 반응이 중요하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기사들이 대응하는 사례들을 들어보니,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로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는 토론장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싸움하거나 일방적인 강설로 스트레스를 받고 일을 마치는 사례도 있었다.

 

분쟁의 요소가 없는 사생활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의 경우에는 공감하며 운행할 수 있다. 대부분 소재는 가족 이야기인데 아내와의 갈등 내지는 자녀에 관한 내용이다. 손님이 자신의 힘든 생활을 토로하므로 자신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경우는 기사가 본의 아니게 상담자의 입장이 된다. 잠시 운행하는 동안 귀에 거슬릴 정도가 아니라면 상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한때는 번창하는 사업을 통해 수입이 좋았는데 지금은 사업이 힘들어져 수입이 줄었다는 손님이 있었다. 자신이 이러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가족들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늘 한결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술에 의지한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상담자가 되었을 때 손님을 가르치는 태도는 피해야 한다. 손님의 입장을 이해하는 편에서 간결하게 대답하면 된다.

 

멋진 가장 노릇을 하느라 힘드시지요. 그동안 참 좋은 가장이셨네요.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으시다니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족들도 이 사실을 안다면 이해하고 감사해 할 것입니다.”

 

결국 손님은 혼자 말하다가 자신의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래도 기사가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게 고마웠는지, 아니면 자신의 말 속에서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렇게 우는 손님을 두번 경험한 적이 있다.

 

대리기사들이 제일 선호하는 손님이 있다면, 조용히 잠드는 손님이다. 게다가 도착지에서 얌전히 깨는 손님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업무의 과정으로 손님과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대부분은 상식선에서 무난하게 일이 마무리된다. 우리는 이것을 하기 나름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제도라는 기본적인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실감하게 되었다.

 

근로자로 인정받는 것의 의미

사고가 일어나면 대리운전보험이 해결책이 되겠지만, 대리운전기사가 다쳐서 오랫동안 일하지 못할 때 이에 대해 책임지거나 보상해 줄 수 있는 제도가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대리운전기사는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는 법적 지위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대법원에서 대리운전기사를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난 것이다. 이 판결은 대리운전기사의 근로조건은 물론이고 권리 보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71일 이후에 콜을 받을 때마다 고용보험료와 상해보험료가 자동으로 지출된다. 처음에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으나, 근로자로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것이 나에게 그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처음에는 몰랐다.

 

대리운전 대기 중 길에서 넘어져 뼈에 실금이 가는 상해를 입은 적이 있다. 병원에서 치료하는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받아 산재급여를 받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산재 신청에 대한 문턱이 낮아지자 특수고용직에 대한 산재급여 신청이 급증하였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밤길을 다니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을 때는 받지 못한 혜택이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환영해야 할 일이다.

 

무지한 사람은 지신의 지위와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하루 나가 일하여 수입을 올리는 일의 반복이 아니라, 어떤 지위에서 일하며, 일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 속에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대리운전기사들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의미가 큰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아가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근로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은 플랫폼 사업자가 정해둔 테두리 안에서 복종적으로 일했다면, 이런 관행을 막고 여러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 내가 하는 대리운전기사 일이 어떤 것인지 알수록, 주변에 변해가는 것들이 보인다. 지역마다 이동노동자 쉼터들이 생겨나고 있다.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밤늦은 시간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나의 노동에 대해 더 나은 발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노동조합에도 가입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 자신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해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단순하게 우리가 어떤 일을 통해 수입을 얻는다는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지위와 권리를 가지고 일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일을 공급하고 있는 회사 쪽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자부심

 

처음 대리운전을 시작할 때에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하였지만, 사람의 모든 일이 크게는 국가의 책임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노동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매일 벌어들이는 수입의 원천이 되겠지만 그에 따르는 후속적인 권리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 대리운전을 시작하였을 때는 8000원짜리 콜이 주어졌을 때도 그런 대리운전 요금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대리운전기사에게는 선택권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회사의 이윤만 생각하는 부당한 조건들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안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리운전 수입의 수수료를 20%에서 25%로 인상하려는 사쪽의 시도에 대한 항의였다. 노동조합을 통한 강한 저항은 수수료 인상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도 근로자의 지위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 대리운전 일에 대한 의미를 고조시켜 주었다. 단순히 수입을 위한 노동에서, 서비스업종으로 손님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사회의 일원으로 사회에 일조한다는 신념이 생긴 것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일을 마무리하고 어떻게 원하는 시간에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가 주된 고민이었다. 추운 겨울, 사람과 차가 없는 오지의 거리에서 벗어날 방법을 몰라 버스정류장에서 추위에 떨며 첫차가 오기를 기다린 눈물겨운 경험도 있었다.

지금은 추우면 지자체에 마련한 이동노동자 쉼터를 찾고, 외지에서 이동이 힘들면, 기사들 끼리 어플을 통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까지 익히고 나니, 대리운전 일을 한다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어졌다. 안전하게 집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대리운전을 통하여 안전에 최선을 다해 귀가시키는 일을 담당하므로 수입을 얻는, 사회의 일원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사회의 일원으로 원하는 것은 더욱 경제가 발전하여, 수요와 공급이 원활하게 균형을 이루며, 사용자와 근로자가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는 그런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밤이 되면 모든 사람이 일과를 마치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리기사들도 집으로 돌아간다. 때가 되면 누구나 인생의 안식처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 길은 누구에게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특수고용노동자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대리운전기사가 노동자로 인정받은 지가 얼마되지 않는다. 이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으며 단체교섭권을 인정받는 결정이었다. 그로 인해 적용받는 고용보험과 상해보험은 만약의 사고나 해직에 대비한 적절한 대책이 된다. 그리고 대리운전자보험 또한 사고를 대비하여 필수적인 항목이지만 2회 이상의 사고시에는 보험이 적용이 되질 않아 사고는 곧 실직으로 이어졌다. 고용노동부는 2024년에 사고 횟수별 할인, 할증제도를 도입할 것을 약속했으나, 아직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제도들이 보완되어 속히 시행되어 대리운전기사가 마지막으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면서 하루가 마무리된다면, 이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