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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내란행위와 성경 속의 사울왕의 제사는 닮아있다.

노아김 2025. 1. 4. 22:23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다. 사회가 다양성을 가지고 역사 가운데 흘러가는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 가운데 살아가면서 우리는 국가적으로 여러 사건을 겪었지만, 그 역사 해석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현재에서 윤석열이라는 자가 왜 대통령이 되었는가? 하는 것에서부터, 그 계엄령을 내려 나라를 혼란하게 만든 것에 대해 온 국민이 분노해야 함이 마땅한데, 일부 사람들은 그 행위를 찬양하기도 한다. 하물며 대통령이 된 자는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생각하여 정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계엄과 같은 위험한 일을 선포했을까 하는 것조차도, 근본적인 가치관의 상이에서 돌출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르는 일들을 보자.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비추어 보자.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과 정치의 방향성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유랑부족으로 살아갈 때는 생존을 위해, 매일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만 고민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에게 공급해 주었다.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은 형통한 이스라엘의 삶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 속에서도 내적갈등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뿐만 아니라 외적갈등도 유출된다.

끊임없이 자신이 이스라엘의 머리가 될 것을 꿈으로 이야기하는 요셉을 그의 형제들이 죽이려고 모의하다.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노예로 팔아버린다. 이 사건은 혈통상의 서열이 제일 낮은 형제가 머리가 되려고 한다는 경쟁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다수결의 원칙을 중히 여기며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왕정정치의 꿈을 가지고 있는 자가 권력을 차지했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불행하게도 윤석열을 통해 현실적으로 목도하고 있다.

내면적으로는 엘로힘 신앙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지만, 떠돌이 유랑민으로 살면서 히브리인이라는 계층적 차별을 받으며 사는 자신들의 현실적인 삶에 대해 이스라엘은 불만을 토로했다. 유목민의 삶이었을 때는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는 그들에게도 자신들을 강력하게 만들 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동안에는 그들의 하나님이 실지적인 왕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역사적인 경험을 통하여 신정정치를 하더라도 신의 대리인인 왕이 있을 때의 강력해 지는 국가의 모습들을 보았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이렇게 대답을 하신다.

 

여러분이 왕을 모시겠다고 계속 고집하면 그 왕은 여러분의 아들들을 징발하여 그의 전차와 말을 몰게하고 그의 전차 앞에 달리게 할 것이며, 또 여러분의 아들들 중에 어떤 사람은 군 부대의 지휘관이 되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종을 삼아 궁전의 밭을 갈며 추수하게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왕의 무기와 전차의 도구를 만들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의 딸들을 데리고 가서 강제로 요리시키고 빵을 굽고 향료를 만들게 할 것입니다.

그가 여러분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빼앗아 그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또 여러분이 추수한 수확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관리와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여러분의 남녀 종들과 제일 좋은 소와 나귀를 끌고 가서 그의 사적인 일을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의 양떼 중 10분의 1을 빼앗아 갈 것이며 여러분은 그의 종이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이 택한 바로 그 왕 때문에 눈물로 부르짖을 것이나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에게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삼상8:7-19)

여기에 백성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는 왕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그가 우리를 다스리며 전쟁에서 우리를 지휘하고 우리를 위해 싸울 것이 아닙니까?”

 

왕정정치에 대한 폐해를 경고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력하게 이를 주장하여 사울을 그들의 왕으로 세웠다. 왕이 없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은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얼마나 존중받는 삶을 살아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왕정정치는 세습적인 귀족정치를 추구한다. 오늘날의 교회가 추구하는 정치체제이며 이로 인해 교회가 쇠퇴하듯이, 윤석열은 손에 왕자를 쓰고 나타나 권력을 잡고는 자신이 모든 분야에 정치적인 선택과 결정권을 가지기를 원했다. 우리나라는 민주국가로서 헌법을 준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이미 왕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윤석열은 자신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삼권분립의 나라에서 행정부의 수장일 뿐임이 드러날 때마다 그는 계엄을 일으켜 왕정국가를 이루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는 곧 이를 실천에 옮겼다. 무모하다고 여기는 보편적인 국민들의 인식을 뛰어넘어 이같은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절대권력화 된 검사로서의 살아왔던 그의 삶에서 학습된 것이다.

이런 무모한 일에 1당과 함께 많은 동조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 , 경을 포함을 각처에 왕정정치에 동조하는 세력이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는 그에게 줄을 서면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하거나 귀족의 신분을 영위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은 엘리트주의는 정치에서 아주 효과적이어서 교회에서 직분을 서열화하고 군에서 계급을 절대화하여 차별을 정당화하는 권력으로 인식되게 한다.

 

자신의 절대권력을 욕망했던 사울은 사무엘이 드려야 하는 하나님에 대한 제사를 자신이 드림으로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는 절대권력을 가지려 했다. 질서를 깨뜨리고 독자적인 권력을 가질려는 욕망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이다. 그 결과는 죽음이다. 사울은 블래셋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고 다윗이 왕위를 이어받게 된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국론을 어지럽힌 자에게 법은 사형을 명시한다.

귀족이 되어 왕정정치의 한 축이 되고자 한 자들은 모두 내란의 동조자들이다. 이들도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오늘날 교회정치가 이와 닮아간다면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한국이 독재정치, 군부정치의 몰락을 보았듯이, 한국교회 또한 권력에 빌붙어 같은 길을 간다면 그 결과를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다. 공산주의와 왕정국가에서는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의 뚯이다.